구분과 경계에 따른 제한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 자유롭게 ‘성장중인’ 회화, ‘살아있는’ 회화로서 창작의지를 실천하는 진유영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 환기미술관 연구원들과 진유영 작가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참가자: 진유영 작가와 환기미술관WM 학예실
일시: 2015년 8월 ~ 10월
장소: 환기미술관
WM // 무엇보다 먼저 선생님께서 회화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 혹은 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셨는지 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진유영 // 15살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잠드신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 얼굴은 내가 익히 아는 어머니의 얼굴이 아닌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연필과 종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사라진 어머니의 얼굴을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첫 시작은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그려야겠다는 필요, 동기를 느낀 것 이라고 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너와 나’ ‘그 사이에 있는 심연 같은 그것’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려야 한다는 필요성 또는 그려야겠다는 욕구도 ‘나와 너’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생소함을 발견하는 순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부재不在하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구현할 필요성’이 ‘나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는 이유’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비로소 “미술은 내가 갈 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여기서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 라는 생각이 미술은 시각예술이 아니고 시각을 뛰어넘는, 보이지 않는 것을 구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실체를 찾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WM // 선생님께서는 회화의 행위와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십니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는 다른 작가들(가령 액션페인팅이나 퍼포먼스 작가들 등) 과는 구별되는 선생님만의 개념과 과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진유영 // 나는 어려서부터 이런 저런 가정을 세우고 상상해보거나 생각하기를 즐겼습니다. 왜 나는 나인가, 너는 왜 너인가, 왜 나는 네가 아닌가라는 질문들이 생각의 바탕을 형성하고 있었고 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등 나 자신이나 세상의 본질과 이치에 대한 물음들에 쌓여있었고 관계성 속에서 답을 찾아보곤 했는데 그런 것들이 나의 작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회화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맥락에서와 같이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 보다는 왜 그려야 하는가, 회화란 무엇인가 라는 기초적인 질문이 회화의 주제가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범주는 화면이라는 물리적인 캔버스의 실체 위에 구현됩니다. 대략 2000년까지의 회화작업에서는 ‘화면이 작가의 은유적 신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연속선에서 2000년도부터는 ‘회화는 어디 있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회화의 존재 방식을 확장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의 방식 역시 나의 삶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WM // 그와 연결해서 선생님 작품에 있어서 자신과 동일시되는 생명력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아울러 지난번 미팅 중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 “가장 아름다운 건 자라고 있는 것”이라는 구절이 가장 와 닿았어요. 그게 어쩌면 선생님께서 ‘미완’이라고 표현하신, 끝을 내지 않고 계속 자라면서 이어지는 의미와 생명, 빛, 유기체라는 단어가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함축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러한 단어들이 선생님의 전시에 드러나도록 보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를 통해서 많은 대중들이 저처럼 생생하게 교감을 가지게 될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앞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선생님이 스스로 갇혀 지냈던 암흑기를 회화의 조형적 표현을 통해 삶의 단편으로 이어가고 이러한 것들이 선생님의 살아 숨 쉬고 자라나는 자아와 밀착되면서 일체화되는 그 부분도 와 닿았습니다.
진유영 // 그래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아이디어를 표출한다든지 독창적인 생각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길을 가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길을 가면서, 발견되는 것과 버려지는 것을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나의 길을 완성헀다’ 라고 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래서 앞으로 올 그 무엇을 예고하는 작품은 생명체라고 부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업을 할 때 ‘미완이다’, ‘아직 자라고 있다’ 라는 생각이 나의 작업 밑에 흐르고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에 ‘창작은 생명체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감지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한 일련의 작업을 마무리 하고 난 후 지난 것과 절단된 상태에서 전혀 다른 작업을 시도할 때입니다. 그 때에도 외형적이 아닌 생명의 심지가 뿌리로부터 올라와있는 것을 봅니다.
WM // 회화는 미완이라 말씀하시면서 해체 혹은 확장하기도 하고 다시 변화를 주며 그래서 살아있는 돌, Living-stone이라 말씀하신 부분이 굉장히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안으로 들어가서 갑자기 깨지고 다른 너와 만나서 상호작용하는 부분들이 특히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조금 더 부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진유영 // 자아를 처음 해체시키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자아가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을 때, 나의 생각과 나의 경험, 나의 의지가 나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즉각 실제행위로 그 생각을 작업에 옮겼습니다, 나의 상체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종이의 중앙 부분에 ‘나의 거기 있음’의 흔적이 될 만한 그림을 그리고 커터로 중앙 부분을 위에서 아래로 종이 전체를 잘랐습니다. 자아를 훼손하려는 이 행위는 아주 빠르고 난폭하게 이루어졌고 난 그때 무언가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창작의 흐름에서는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시작이었나 봅니다. 종이의 본래 가장자리부분이 중심으로 와서 맞붙여지고 두 조각을 붓 자국으로 꽉 찬 삼각형 모양의 종이로 정착시켰습니다. 나는 이 형태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되고 싶었던 존재의 형상이 하나의 신체의 모습을 띄고 거기 있었습니다. 나의 밖에 있던 것들이 나의 중심에 들어와 있고 깨트려진 자아가 완전히 밖으로 열려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하면서 발견한 사실이 나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자아가 훼손되는 만큼 내 안에 죽음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자리가 만들어 지고 있음을 작업에서, 그리고 삶에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첫 번째의 불가역의 연작으로부터 많은 다른 연작들이 나왔습니다. [상호풍경], [반비례], [골고다], [회화의 초상], 그리고 [Living Stone] 에 이르기까지 캔버스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두 폭 이상 다 폭(polyptyque)의 형태로 변해 갔습니다. 사람들의 만남과 흩어짐이 정체될 수 없는 것처럼 [Living stone] 에서도 화면들의 조합의 가능성이 열려있게 되면서 새로운 요소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미완, 즉 살아있는 조합, 변형이 가능한 조합combination이 되게 합니다. 작품뿐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도 나는 나와 만나는 사람들 간의 관계도 이와 같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WM // 기존의 작품비평의 관점이 완성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표현이나 기법에 포커스를 맞추는데 비해 선생님의 작품세계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수록 ‘창작의 사이에 단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무게중심을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선생님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흡입력 강한 부분이며 ‘자라고 있는’ ‘생명력’의 키워드로서 작업을 대변할 수 있는 것 같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이 가지신 고유한 점인데 이 점이 선생님의 작업을 아주 생생하고 젊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요즘 시각으로 볼 때 더 넓고 깊은 소통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지요. 이런 차원에서 젊은 작가나 미술사 혹은 비평을 하는 젊은 세대들과도 교감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전시를 하신 ‘나눔’이라는 퍼포먼스 부분이나 알제리에서 하신 자원봉사의 부분 등이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건지요?
진유영 // 네 그렇습니다. [한강에 다가가다] 에서의 한강은 은유의 영역에 속하지만 ‘알제리에 다가가다’ 라고 할 때 알제리는 은유 아닌 실재가 되는 것이겠지요. 다가가기 전의 한강은 이미지이지만 다가가서 가까이가보면 한강은 아름다운 post card가 아닙니다. 한강에 다가가면 우리는 거기서, 사람을 수없이 삼켜 버린 괴물이라는 실체를 만나게 됩니다. 멀리서 보면 알제리는 이미지처럼 잡히지 않지만, 가까이 가게 되면 상처와 충격으로 감정이 마비되고 언어를 상실한 어린 영혼들을 팔에 안게 됩니다. [VIA ZERO] 의 CD는 생명 없는 가상의 세계에 속해 있지만 맥박소리를 넣어 주고 옷을 입히면 십진법 회전의 춤을 추는 생명체가 됩니다. 나는 회화의 역동성을 좋아합니다, 은유와 실재, 이미지와 실체, 가상과 실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는 자유로움은 다양한 제작 방법을 유도하고 작가와 대상 사이에서 척도의 변화를 가져오지요. 대상에 다가가기 위해 무한히 작아지기도 하고 또한 작아진 나와 너들이 연결되어 하나를 이루어가고 있기애 무한대로 커 지기도합니다. 나의 작업의 길은 막연히 공상적이 아니라 영적靈的이기 때문에 실체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방법적으로도 좀 더 생동감 넘치는 in-situ나 퍼포먼스의 성격을 가진 작품들이 앞으로도 많을 것 같습니다.
WM // 지금 말씀하신 내용에서 직접적으로 확 와 닿는 게 중앙 홀에 설치될 작품 [contre-jour] 인데요. 역광으로부터 빛을 느끼기 위해 빛으로서 드러나게 하는 부분이 작품 후면에 있지요. 뒤에서 빛을 비춰서 직접 보는 방식은 빛을 실질적인 현상이나 실체, 상황, 물질적인 구조 등을 통해 느끼게 하는 것 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더 실제적으로 느껴져요. 그래서인지 ‘빛 위에 그리다’의 contre-jour 표현이 함축적이라 여러 번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었는데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부분과 작품의 화면 안에 느껴지는 실체 또는 실제에 대한 부분들이 함께 아우르면서 와 닿았어요. 그런데 ‘빛 위에 그리다’의 제목에서 빛이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부분에 있어서 또 다른 ‘진리의 빛’, ‘빛과 그림’ 이런 것들을 생각하시는 건가요?
진유영 // [빛 위에 그리다]와 ‘회화와 빛’ 에서의 빛은 완전한 빛, 진리를 말 하는 것인데 회회는 빛이 아닌 영역에 있기에 빛을 모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빛과 빛을 가리는 어두움인 회화는 대립된 관계에 있고 서로 침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진실을 통하여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회화는 빛이 아님을 인정하는 진실, 빛을 가리는 어두움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진실, 회화는 빛을 모방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진실을 통하여 빛이 드러나게 되며 이 빛은 어두움(회화) 속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래서 빛을 머금은 실체들이 태어나게 되는데 나는 이 아이 들을 빛 송이라 부릅니다.
WM // 선생님의 작품 [contre-jour] 에서 빛이 들어오는 창의 창틀 같은 빛을 막아내는 부분이 강하고 진할수록 ‘보여지는 빛’이 강렬해진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이러한 빛을 만들어주는 역광부분(창틀 부분 등)들을 강하게 그려냄에 있어서 아크릴 물감(수용성이지만 불투명한 재료)을 사용하면 불투명하고 매트한 재료의 특성상 역으로 ‘보여지는 빛’이 더욱 강렬하게 나타날 수도 있을 텐데요. 선생님께서 이 작업에 사용한 수채화라는 미디엄의 어떤 특성에 매력을 느끼고 선택하셨는지, 이 매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진유영 // 수채화물감은 그 민감성, 생동감, 순간적 표현력. 투명성등의 매력적인 속성이 마치 생명체의 움직임 같아서, 부동적이고 무관심한 화소들의 집합체인 디지털 사진의 이미지와 큰 대조를 이룹니다. 죽음과 생명의 대결이라고 할까요?
나는 이 두 매체 사이에서 작업을 하면서 밀납 주조법의 방법으로 회회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밀납으로 모형을 만들어 진흙으로 주형을 만든 뒤 그 위에 구명을 뚫어 뜨거운 쇳물을 부으면 틀 안에 있던 밀납은 녹아서 빠져버리고 쇳물이 그 주형을 채우게 됩니다. 이와 같이 나의 작업에서는 밀납을 빼내는 대신 photoshop 작업으로 광도를 조정하여 우선 화소들의 흔적을 약하게 만든 다음, 그 위에 수채화 작업을 합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영역을 왕복하는 동안 화소들은 사라지고 수채물감이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작품에 따라서는 수채화 대신 색연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밀납주조법 아닌 화소 주조법으로 제작하는 회화작가입니다
WM // 회화에서는 특히 빛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중요한 화두가 됩니다. 선생님의 회화 안에서 더욱 핵심적인 대상으로 부각되는 ‘빛’은 자신이 실재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않고 어두운 실체에 반응하여 나타납니다. 이 빛은 더 강하고 밝은 영적인 차원의 빛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보여지는 빛이 아닌 스며드는 빛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대문 형무소’ 작품 속의 빛은 선생님께서 ‘빛’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그려내지는 않으시지만 빛을 투과하는 다른 형상과 분위기를 통해 빛이 존재함을 ‘알게’하기보다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실재의 창을 통해 보이는 빛보다 이렇게 ‘빛의 존재함’에 대한 선생님만의 해석이 담긴 작품이 바라보는 관람객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선생님 작품 앞에서 ‘빛이 저기에 그려져 있구나, 빛이 저기에 존재 하는구나’를 자각하기보다 빛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와 스며드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빛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서대문형무소>와 같은 특정 장소를 설정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유영 // [서대문형무소]는 작은 수감실에 설치되었던 in-situ 작품입니다. 2004년 서울 신촌 아트페스티벌의 흐름과 충돌 전에 초대되었고 내가 설정한 장소가 아니었지만, 수감실에 작품 설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었던 그 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마주 본 두 벽면(벽2와 벽4)에 빛이 들어오는 창의 그림자와 확대된 발의 이미지를 설치했습니다. 작가인 나 자신이 수감자가 되어 발 앞에 작아지고 높은 창을 통해 떨어지는 빛이, 막힌 벽에 굴절된 것을 바라보며… 나 자신이 작품과 함께 그 안에 in-situ되는 듯 했습니다.
WM // 이 작품이 빛에 대한 처음의 시도이신가요?
진유영 // 네 그렇습니다. 이 작품이 [회화와 빛], 또 연이어 [빛 위에 그리다] 의 연작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수감자의 방에서 작품을 하는 동안 빛에 대한 나의 생각이 구체화되었어요. 빛이 아닌 것을 그릴 때 비로소 빛이 나타난다는…
WM // 선생님께서 작업하실 때 회화적인 것 혹은 붓으로 터치하는 것과 디지털 이미지 작업을 하면서 느껴지는 감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으신가요?
진유영 // 나는 붓과 물감으로 그리는 것과 사진으로 디지털작업을 하는 것이 매번 교차되어서 오기 때문에 크게 다른 점보다는 두 테크닉을 교차시키는 데 중점을 둡니다. 내 작업은 소위 순수 회화에 속한 것도 아니고 디지털의 영역에 속한 것도 아니며 그 두 영역을 오가며 마치 변환기의 역할을 하는 회화라고 여겨집니다. 회화의 기능 속에는 자신의 활동영역을 넓히는 기능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WM //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서 가령 붓 자국은 내가 화면에서 즉시적으로 보이는 건데 디지털 작업을 하면 프린트를 해서 결과를 보는 거죠?
진유영 // 두 테크닉을 분리시켜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두개의 다른 층이 오버 랩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제작 중에 가장 흥분과 즐거움을 주는 시간입니다. 제 작품이 ‘회화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가는 작업이기에 저의 작업 경과의 시점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영역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회화의 작업이 출력 전에 들어갈 수도 있고 (편도, 한강의 연작) 출력 이후에 아크릴 물감이나 색연필로 마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CD 위에 천을 입히고 직접 painting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WM // 저는 재료적인 것이 궁금한데 1층 타피 방에 비디오 작업하신 CD를 특별하게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유영 // 그것은 제가 그 디지털 사진의 화소를 photoshop작업에서 점차적으로 제거시키며, 수채화로 대신 그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에요. CD를 가상세계의 상징물로 사용한거죠. 디지털이 아날로그로 되면서 가상적인 것을 실체화하는 의도로 작업한 것이예요. 바느질을 한것은 CD가 가상이 아닌 몸체임을 모순되게 나타낸 것인데, 어떤 사람이 이 작품을 보며 ‘CD가 수의를 입었네’ 라고 했어요. 이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VIA ZERO입니다. 0점을 통과한다는 의미이죠. 물질의 양과 무게가 쌓이지 않고 0점을 통과 하면서 버려지고 다시 시작하는 10진법 회전입니다. 맥박의 박자에 맞추어 회전하게 헀습니다.
WM // 그것도 생명력과 관련 있는 사운드이군요. 이야기를 바꿔서 환기재단과 환기미술관과의 만남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진유영 // 저는 김환기 선생님을 생전에 뵙지는 못했지만 김향안 여사님을 통하여 조금씩 그 분의 예술 세계를 알게 되었어요. 제가 김향안 여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여사님께서 70년대 후반 파리에 환기재단을 세우시고 나서입니다. 1980년 파리 7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그룹전을 여시면서 저에게 출품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10년간 가까이 지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요. 1970년 중반부터 저는 파리와 지방에서 그룹전과 공모전에 초대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있었어요. 1982년 빠리에 있는 Gabrielle Maubrie 갤러리에서 개인전 제의가 들어왔지만 저는 전시회를 준비할 수 있는 재정이 하나도 없었는데 김향안 여사께서 도와주셔서 파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고 또 작품구입도 해 주셨습니다.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는 분입니다.
WM // 더 거슬려 올라가서 선생님께서 파리로 가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진유영 // 저는 대학을 다니면서 프랑스로 유학 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당시로서는 그런 기회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마치 유학 갈 준비하는 학생처럼 불어공부를 마냥 열심히 계속했어요. 미술대학 가까이 있는 불문과에 가서 강의 듣고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가서 저녁강의 듣고 불란서 문화원에 다니며 영화도 보러 다니곤 했어요. 그 때는 불문학 전공한 학생들이나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으며 유학하던 때였는데 제가 졸업반이 되었을 때부터 미술 전공한 학생도 정부 장학생이 될 수 있었고 제가 그 첫 번째 해의 미술 장학생으로 1969년에 프랑스로 떠나게 된 것이죠. 저는 프랑스 남쪽 마르세이유에서 미술대학을 다녔는데 주말이면 지방 미술관들, 파리의 국제 전시 등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개념미술, 신사실, 누보레알리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BMPT, Suport-Surface 등 새롭고 혁신적인 미술경향들이 그때 다 쏟아져 나오고 있었어요. 서울에서 미술대학을 갓 나온 아주 어린 작가는 이 엄청난 물결에 충격을 받고 심각하게 이 커다란 흐름 속에 나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70년 드디어 첫 작품 연작인 하늘바탕이 시작되었어요. 직접 작품들과 부딪치는 충격들이 저의 자리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WM //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때 상황에 맞게 편하게 대응하셨다고 했지만 굉장히 많은 노력과 인내와 용기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젊디젊은 이방인 작가에게 모든 것이 혼돈스러웠을 것이라는 사실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으로의 가능성이 열려 있던 시기였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로부터 40년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까지의 창작 과정에 이어서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계획은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진유영 // 제가 만든 생명체들에서 새 순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가를 살피며 그 움직임을 따라 가는 것이 저의 길이 될 것 같습니다. 곧 새로운 시작의 길이 열립니다.
WM // 앞으로도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