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수화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작품은 대형 미술품 경매 때면 낙찰가, 출품작 수 및 낙찰총액에서 줄곧 최상위다. 서울옥션의 3월 20일 경매에도 출품작 1, 2번 및 도록 뒤표지가 김환기의 회화다. ‘국민화가’ 중에서도 이중섭, 박수근의 경우 전해지는 작품이 소품 위주로 500점이 넘지 않는 반면, 김환기는 5000점 이상 남겼고 200호 이상의 대작도 적지 않다.
수화는 서울대·홍익대 미대 교수를 역임했고, 한국 추상미술을 이끌며 작가로도 주목을 받았다. 도쿄(東京) 유학을 거쳐 국내서 활발하게 작업한 한편, 안주하지 않고 문화예술의 도시인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에서 ‘세계 속 내 미술’을 모색하다 결국 뉴욕에서 61세로 눈을 감았다.
올해가 수화 탄생 100주년의 해. 100주년을 기념해 ‘김환기 미술의 중심’ 환기미술관에서 대규모 기획전을 6월 9일까지 연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선 7월 25일까지 온라인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전시 제목은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따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제1회 한국미술대전서 대상을 수상한 수화의 1970년작 점화(點畵) 작품명이기도 하다.
지난해 연초 갤러리현대의 김환기전이 한국을 대표하는 화상이 직간접으로 접했던 작품 위주라면, 환기미술관 100주년 특별전은 수화 작품의 목록이 탄탄한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기획이다.
수화는 전남 작은 섬마을 출신으로 일본 유학 시절 아방가르드와 추상미술을 실험했고, 1956∼1959년 파리에 머물며 자연과 백자항아리, 목가구 등 전통 정서를 일깨웠다. 또한 1963년 이후 1974년 눈감기 전까지 뉴욕서 푸른 하늘과 바다를 연상케 하는 화폭 위에 우주, 별, 그리운 얼굴, 도시의 불빛처럼 무수한 색점이 펼쳐지는 점화를 완성시켰다. 수화의 작품은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 및 프랑스 파리·니스, 벨기에 브뤼셀, 뉴욕서 10여회 개인전을 통해 일찌기 해외에도 선보였다.
미술관엔 산월추상, 십자구도, 색면추상을 비롯해 종이드로잉, 작고 직전에 몰두했던 대형 전면점화 및 뉴욕 아틀리에를 그대로 옮겨놓은 공간까지 볼거리를 다양하게 갖췄다.
1층 중앙 전시장에서 대형 청색 점화 ‘우주’와 더불어 이젤, 사물함, 청바지, 모자, 기타, 옷감과 습작 등 수화의 뉴욕 아틀리에 물건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2층엔 1963년 상파울루비엔날레 한국대표로 참가해 회화부문 명예상을 수상한 ‘운월’ ‘달밤의 섬’ 등이 전시 중이다.
수화가 뉴욕 시절 작업한 대형 점화들이 걸려 있는 3층 전시장은 애호가들에겐 순례의 장소 같은 기념비적인 공간이다. 수화가 목디스크 수술 끝에 갑작스레 작고하면서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미완성의 마지막 작품은 온통 먹색이다.
“수화는 자신이 겪고 있는 시대의 우울을 관조와 유머로 승화시킨 천상의 예술가였다.”
박미정 환기미술관 관장은 “수화가 강 산 달 구름 등 우리 자연의 모습과 백자 등 전통기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민족정서를 일깨웠고 망향의 애틋함과 인간을 향한 흠모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술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구상계열의 작품과 또 다르게 뉴욕시대 점화는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며 ‘자연에서 우주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점 선 면을 통해 함축적이며 절제된 화폭을 펼친 수화 예술의 정점이라고 지목했다.
수화는 직접 만든 캔버스에 아교를 칠하고 유채물감으로 선 점을 긋고 그 둘레를 반복해 칠하느라 목디스크에 걸릴 만큼 치열하게 작업했다. 점화를 통해 수묵화의 번짐, 스며듦 같은 기법으로 리듬과 짜임이 있는 특유의 화풍을 펼쳤다.
미술관은 봄 전시에 이어 가을 전시를 통해 유화를 집중 조명하는 한편, 유화 전작도록도 펴낼 계획이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