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부암동 환기미술관 김환기 특별전…
한국 대표작가의 명작으로 가슴까지 호사를 누리고,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과 영화가 어우러진 전시장을 기분좋게 거닐며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그러곤 600년 노송의 당당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감상하고, 더불어 봄이 오는 계곡을 산책하는 나들이. 이 정도면 서울 시내에서 즐기는 명품 ‘문화 나들이’가 아닐까.
광화문에서 자하문터널을 지나면 도로 양쪽의 부암동에 2개의 미술관이 마주보고 있다. 오른쪽 언덕배기의 환기미술관, 왼쪽의 서울미술관이다.
부암동의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한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휘 둘러보고 들어서는 환기미술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수화 김환기(1913~74)의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열리고 있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한 구절이자, 대중가요 제목이며, 수화의 작품명이기도 하다. 생전에 “예술작품 속에는 노래가 있어야 한다”던 수화 작품전에 딱 어울리는 전시명이다.
전시회는 수화의 삶과 예술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백자항아리와 목가구 등 전통 문화유산을 서양화 양식으로 풀어내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 70여점이 선보인다. 사진과 일기, 붓과 물감 등 각종 유품도 볼 수 있다. 3층 전관에 펼쳐진 전시회는 시대에 따라 층별로 ‘서울·동경시대’ ‘파리시대’ ‘뉴욕시대’로 구성됐다.
1층은 일본 유학(1930년대)과 한국전쟁 전후 중심이다. ‘자화상’과 ‘집’(1936년), 시인 조병화의 담배 파이프를 훔쳐온 뒤 미안함에 조 시인에게 그려준 ‘여인’,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론도’ 등이 나와 있다. ‘섬 소년 김환기’(전남 신안 안좌도 출신임) ‘수향산방’(집이자 작업실) ‘달항아리 화가’ ‘신사실파’(한국 최초의 추상운동) 등의 주제 아래 각종 기록물·영상자료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한쪽에는 유품들로 뉴욕활동 시기 아틀리에를 재현해 놓았다.
부산 피란시절의 궁핍함이 담긴 드로잉 작품들을 거쳐 들어선 2층은 파리시대(1956~59)다. 한국에서의 안정된 삶, 명성을 뒤로 하고 프랑스로 날아간 수화는 한국적 서정성이 짙은 작품들을 빚어낸다. 1963년 상파울루비엔날레 명예상을 수상한 ‘운월’을 비롯해 십자구도 작품들이 선보인다.
1963년에서 타계 때까지인 뉴욕시대 전시장에는 점화들로 구성됐다. 화폭마다 네모로 일일이 둘러싼 조그만 점들이 가로, 세로 2m가 넘는 대형 화면에 꽉 차있다. 자세히 보면 점들은 수묵처럼 번져나갔다. 유화물감을 묽게 만들어 수묵의 번짐 효과를 구현한 것이다. ‘우주’ 등 작품 앞에 서면 수화가 바로 수행자, 구도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 마지막 작품은 푸르고 붉은 기가 도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먹빛이다. 마지막 작업하던 미완성 작품으로, 화면에 미처 지우지 못해 남은 연필 선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6월9일까지. (02)391-7701